160104 - HB 편지

2016. 1. 5. 00:08 from : W

* 미래 날조가 심각합니다 ※주의




아, 눈부셔. 눈 위로 햇빛 직격탄이 파파팡 떨어져 우으으... 앓는 소리를 내곤 양 손으로 눈을 가렸다. 지금 몇신데 이렇게 눈이 부신거야, 오늘 공강인가, 알람 왜 안울렸지허리아파... 이리저리 몸을 베베 꼬며 다시 옆으로 웅크렸다가 그래도 이상한 불편함이 가시지 않아 도로 정자세로 눕고. 어제 뭐했지, 왜 이렇게 피곤한거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을 퍼뜩, 끝맺게 만든건 작은 덜컹임과 도란도란 여러명의 말소리. 그리고 기차소리였다. 아 맞다. 나 여행나왔지.





대에게 보내는 편지



-


아, 형. 일단 먼저 진짜 별거아니라구 말할게요. 진짜. 진~~짜. 

나 금방 돌아올거구. 멀리 간 것두 아니구. 잠깐 기차타구 바다

보려구요. 나 응, 얼마전에 왜 뮤지컬 아리에서 배역 땄다구 

그랬잖아요! ^0^ 근데 그게 그, 엄청 사랑에 빠진 사람이래요. 

근데 막, 아무리 해도 선배가 지금 당장 사랑을 눈 앞에 둔 것 

같지 않다고. 좀 더, 뭐랄까. 아무튼. 우리 선배 진짜 깐깐해-_-

아무튼! 그래서 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니까 좀 심란해지더라.



사실 이거 형이 안볼거라 생각하구 막 이렇게 쓰고 있어

형 이번에 외국나갔잖아. 내 목표는 형이 돌아오기 전에

집에 다시 들어가는거야 ㅋㅋㅋ 아 다시 돌아와서 이거

보이면 바로 태워버려야지... 형이 돌아오는 날 다음날에 

딱 집에 올거지롱. 어차피 형, 오자마자 숙소가서 자니까.

아니아니, 피곤하니까. 투정부리는거 아니구. 오지마! 응!

가서 주무세요 안그래도 요즘 말랐던데. 걱정되잖아. ㅠ




아침 내 좁은 기차 안에서 몸을 구기고 잤더니 성한 근육이 없다. 가방을 벗어 바닥에 내리곤 바로 앞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으으, 기지개를 키곤 허리를 이리저리, 목도 이리저리 돌렸다. 뚜둑거리는 소리가 귀에 크게 울려 앞으론 돈 많이 들더라도 값좀 나가는 기차를 타야겠다며 중얼거렸다. 나이 22에 이게뭐야. 하아, 한숨을 쉬곤 고개를 훅 젖혀 위를 올려다 보니 햇빛이 또 강렬하게 쏟아지더라. 눈을 찡그리며 손 등으로 햇빛을 가리니 그제야 파랗고 하얀 구름들이 시야에 들어오더라. 아ㅡ 날씨 좋다. 첫 날부터 짱이네.


덜컹이는 버스 창밖으로 지나는 풍경이 정말 tv에서나 보던 시골처럼 생겨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창에 코가 눌릴 정도로 바짝 다가가 우와, 우와 소리만 연신 내뱉었다. 대전의 주택가에서 살다 이사온 곳도 서울. 친척집에 내려간 적도 없었으니 여태 도심가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초록색의 잔상들이 눈에 남아 지나가는게 나이들어 귀농하는게 이런걸까, 싶은 맘을 들게 하고. 다시 구겨졌던 몸을 쭉쭉 풀고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땅끝마을까지 왔다는게 실감이 나더라. 반사적으로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꺼내들다 도로 꾹 깊숙히 집어넣었다.




우리 형, 데뷔한지 벌써 2년이였나. 연습생 2년만에 데뷔하다니

진짜 짱! ㅋㅋㅋㅋ 요즘 형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릴 때 마다 나

되게 뿌듯하구 막 그래요. 2년간 고생 많았어요. 진짜루. 멋있어.

응, 요즘 바쁜시기죠. 알아. 나 각오도 했었고. 형 데뷔하면 이제

바쁘고, 집에 잘 못오고. 같이 있을 시간 많이 줄어드는거 진짜

형 노래 계속 듣는 것 만으로도 한 80%는 치료가 되는데 20%가

계속, 남더라고. 원래 진짜, 몰랐어. 진짜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어제따라, 막. 응, 좀. 그렇더라. 이상하지? 응, 그래서 나온거야.



방을 하나 구하고 짐을 풀고나니 벌써 푸르스름하니 어둡더라. 아, 안돼! 다급하게 신발을 구겨신고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이미 노을은 다 져버려 아름아름한 붉은 기운만이 쩌ㅡ 산너머에 살짝 걸쳐져만 있었다. 일몰 보려구 했는데... 도로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와 구석에 쌓인 이불 위에 풀썩 그대로 엎어지니 방이 정말 고요했다. 그래도, 집에 있을 땐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서 괜찮았는데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있으니 또 가슴에 사무쳐오는게. 입술을 잘근 씹으며 눈만 꾹 감고 있으니 조용한 적막사이로 숨소리랑 풀벌레 소리가 가득 체워졌다. 찌르르, 작은 소리와 아득하니 멀리서 들리는 멍멍이 짖는소리. 새소리까지. 푸스스 비집고 나온 웃음에 비니를 벗어내곤 앞머리를 탈탈 털며 다시 기지개를 폈다. 덕분에 우울한 마음 싹 사라졌다, 고마워 동물친구들!




형 숙소에선, 좀 자요? 괜찮아? 괜한 걱정인가? 혹시 못잘까봐.

하긴 2년간 못잤으면 진짜 큰일이겠다 ㅋㅋㅋㅋ 밥은 잘 먹죠?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카톡 답해주는거 고마워요. ^_^감동

난 요즘 잘 지내요. 형 몫까지 대학 생활 해야지! 선배들이랑두

잘 지내고, 후배랑도 잘 지내고. 술도 마시고 ㅋㅋㅋ밥도 먹고

때때로 미안해요. 나만 편하게 사는 것 같아서. 나도 빨리 취업

해서 우리 형 도와줘야 하는데. 쪼금만 기다려요 내가 업어줄게.

내가 형 생활에 크게 관심 안갖는건... 알면 욕심 날까봐 그래요.

내가 가서 해주고 싶다ㅡ 이런거. 으응, 이 얘기 한 적 있었나?




...이러다 다시 고등학교 때 생활패턴으로 돌아가는건 아닐까.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하면서 팅팅 부은 눈을 꾹꾹 눌러대니 그 사이로 오후의 햇빛이 잔뜩 들어온다. 안돼, 어떻게 만든 성실이 단백우인데. 이리저리 뻗쳐 빛깔까지 정말 새의 집을 생각나게 만드는 주황머리를 손으로 꾹꾹 눌러내린다. 한동안 습관이 된 옆자리 더듬거리기도 이제는 안한다. 그저 비틀비틀 이불에서 벗어나 귀여운 커플칫솔 중 혼자만 잔뜩 닳아있는걸 집어 들어 치카치카 이를 닦을 뿐이다. 뭐, 이제 별로 아무렇지 않다. 읍파,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느릿느릿 옷을 꿰어입자 벌써 오후2시. 고등학교 땐 이게 정상이구, 이제야 슬슬 움직이는 시간이였는데, 형도 나도. 작게 키득이곤 문 밖으로 나섰다.




대학교에서 여자애들이 형 이름 부르면서 꺄르르 웃으면 나

괜히 뿌듯하다? 아 위에 썼구나 이거;; 요즘 음방 같은거 못

가서 미안해요. 요즘 수업에 집중하느라 알바 하나 끊었더니

돈이 없더라... 아 절대 돈 달라는거 아니구! 진짜! 시간도 좀

부족했구. 그래도 나 집가면 꼬박꼬박 찾아보니까 봐줘요ㅎ

나 한번은 형이 너무 보고싶어서 학교에서 막 형 영상 돌려

보다 여자애들이 뒤에서 수근거렸잖아. 남팬이냐구. ㅋㅋㅋ

뭐 어때. 집에선 모니터에 손도 대봤는걸. 아 이거 왜 볼펜!!




길치인걸 어찌하리. 지도를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이게 여긴지 아니, 왜 몇몇개 건물만 써놓는데, 그려놓을거면 좀 더 어? 잘 그려놓던가. 씩씩 거칠게 지도를 접고는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저기요, 여기 가까운 바다... 저기, 여기 바다. 저기요!! 그렇게 우여곡절 물어물어 그나마 가장 가까운 바다로 나왔다. 수평선에 파란색이 보이자마자 내달렸더니 바다가 눈 앞에 왔는데도 헉헉, 숨을 고르느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 나 진짜 운동부족인가봐. 근처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 않아서 다리를 주물주물 마사지하곤 크게 몇번 숨을 고르자 그제야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바다가. 아, 예쁘다.




나 좀 외로워요. ㅋㅋㅋㅋ되게 뜬금없이 써버렸다. 응, 근데

진짜. 좀. 그런 것 같아. 이거 쓰다보니까 더 그러네. 미안해

아 이거 콧물자국이에요. 휴지 가져와야지 민망하다 ㅋㅋㅋ

나 편지 진짜 못쓴다. 솔직히 지금도 부끄러워서 막 아무말

이나 쓰고 있는데 너무 아무말이나 쓰나?ㅋㅋㅋㅋ미치겠네.

응, 아니. 요즘. 좀, 오래 못 봤잖아요. 그 전에도 10분 봤고.

아직도 어리광 부려서 미안해요. 미안해. (글씨가 번져있다)

아 자꾸 콧물이 떨어지네 ㅋㅋㅋ 아이 민망해. ^ㅡ^;;;헤헤




아무리 봐도 관광객이니 관광지를 알려줬겠지.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녀 불타는 모험심으로 더 으슥하고 사람 손길 닿지 않은 듯한 곳을 찾아다녔다. 모래 사장은 전부 외부인이 차지했으니 난 바위를 노린다. 조금 위험해 보이지만 난 대한민국의 건장한 22세 청년! 얇은 자켓의 팔을 허리에 꾹 묶고 휴대폰은 뒷주머니에 깊게 쑤셔넣은 채 조심조심 기어 올라가는 것처럼 네 발로 바위 사이를 올라가니 적당히 앉을 만한 커다랗고 평평한 돌이 보이더라. 아싸! 빙구마냥 웃으며 휴대폰을 조심히 먼저 내려두곤 옆에 주저앉았다. 


후아, 숨을 내쉬며 앞을 보니 온통 다홍빛에, 조금 핑크색인 것 같기도 하고. 붉은 해가 저 멀리 지는데 바다가 반짝이더라. 막, 주변에 사람소리도 하나도 안들리고 나 혼자 있는 것 처럼. 바람소리만, 들리고. 그렇게 한참을 아무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아차, 노래.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노래만 부르면 하고 싶었던거 전부 하는건데. 옆에 내려 놨던 휴대폰을 조심히 들어 이번 형 신곡의 mr을 틀었다. 잔잔한 선율과 함께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후, 작은 심호흡을 시작으로 가만가만, 조용히. 말하는 듯이. 하이라이트에서도 그저 담담하게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다음 트랙이 시작되자 살짝 떨리는 손으로 노래를 껐다. 5시. 형은, 뭐해요?




아 벌써 두 장째야. 놀랍다. 응, 외롭다 그거. 진짜 괜찮아

혹시 자책할까봐 말하는데, 진짜 형 탓 아니니까. 그치?

스케쥴 빡빡한게 형 탓인가... 매니저 형 좀 쉬게해줘요 ㅜ

나도 형이 아이돌 했으면 좋겠다 했잖아. 근데 내가 맘이

좀 지금 힘들어서 힐링여행 떠난거야. 아니아니 약해져서.

아 또 콧물나네. 코찔찔이 단백우. 응, 하고싶은 말은 그냥


보고싶다구. ...형 보고싶어. 보고싶 (글씨가 번져있다)




 가고 싶었던 여행을 와서, 보고 싶었던 바다랑, 일몰을 보고. 혼자 노래도 부르고. 그러면 좀 마음이 추스려 질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였다. 기차에 타서 내려서, 잠이 들고. 깨서, 여기까지 와서 당장 지금까지도 생각나는건 온통 너 뿐이라서. 왜 난 아직도 어리광쟁이 인건지. 그거 하나 못 견뎌서 무슨 지탱을 해주겠다고. 흐윽, 새어나온 울음소리에 스스로도 놀라 히끅, 입을 틀어막지만 한번 터진게, 쉽게 안막히더라고. 어린애다 난 아직도. 울거면 멋지게 눈물만 흘려야지, 했는데 이렇게 엉엉 소리나 내고있고. 형아, 혀엉... 흐어, 현아아.. 히끅, 선우, 현... 저 위 쪽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는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잖아, 한번 와르르 무너진 방벽은 콸콸 쏟아지는 물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다시 못 세우는걸.




그렇게 결국 그 날 당일 기차를 타고 도로 올라와버렸다. 바보다 나는. 뭐, 어차피 일찍오면 현관 앞에 고이 놔두고간 편지 빠르게 태울 수 있고 좋지 뭐.. 비척비척, 얼마나 울었다고 그새 다시 부어오른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짚다가 하아. 한숨을 쉰다. 얼굴 살은 대체 언제쯤 빠질까. 슬슬 익숙한 거리들이 보이고 저 멀리 우리 집이 보였다. 불 꺼져있네, 그렇겠지. 분명 보지 않기를 바라고 그저 돌아왔을 때 왜그랬지! 다신 안그래야지!! 하는 다짐을 절로 만들게 하는 흑역사 생성을 위해 놔둔 편지였는데, 막상 네가 못봤다 하니 또 시무룩한게. 아무래도 사람은 모순덩어리다. 


그래서 여행의 결과는? 괜찮았다. 한번 펑펑 울고나니 울컥해서 훌쩍 기차를 탄게 쪽팔려지고, 제정신도 돌아오고. 보고싶은거 하고싶은거 다 했더니 생각보다 마음도 후련하고. 여전히 너는 보고싶지만, 한계까지 올라왔던 감정을 터트리니 다시 한동안은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응, 그래도 다음번 팬싸는 응모해봐야지. 가서 모르는 척 해볼까, 하는 장난도 생각나니 진짜 괜찮아진 것 같다. ...그래도 보고싶은건 보고싶은거고. 갔더니 형이 있는 기적은, 없겠지. 지금쯤에야 숙소 거의 다 왔을 시간인걸. 벌써 4년간 오르고 있는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었다. 형,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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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요플레인 :